나만의 공예를 만나는 일주일
CRAFT WEEK 2018

2018. 5. 1 — 5. 7

2018. 5. 1 — 5. 7

속 찬 나무와 빈 그릇

프로그램 속 찬 나무와 빈 그릇
스팟 KCDF갤러리 2전시장
시간 5.2-5.8, 10:00-18:00
주소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11길 8 KCDF갤러리
웹사이트

'2018 속 찬 나무와 빈 그릇'

글,사진: 이창수

지리산 ‘물건’들이 모였다. 셋이다.

5년 전에는 청오, 상흡 둘이 모인 적은 있었다. 이번엔 ‘지역의 걸물, 진주요 홍우경’이 함께해서 셋이다. 각기 실답게 무르익은 목다구와 그릇을 한 자리에 펼친다고 하니 벌써부터 구경꾼들의 기다림이 요란하다.
그들은 이러하다.

청오 김용회.
그의 재주는 참으로 용하다. 죽은 나무 살려내기도 하고, 산 나무 죽이기도 한다. 나무 창고에서 시간의 먼지가 켜켜이 쌓인 먹감나무를 꺼내들고 자르고 깍고 파내고 한참을 끙끙댄다. 담배 한 대 물고 물끄럼이 바라보더니 다시 자르고 깍기를 반복한다. 허참! 대패로 밀고 톱으로 자르고 끌로 파내니 나무의 절반이 없어지는 것 같다. 그래도 아까워하거나 아쉬워하지 않는다. 끝까지 밀어붙여야 물건이 나온다. 군더더기 없는, 그래서 그 나무가 갖고 있는 절대미를 드러내려는 그의 손끝은 매섭기만 하다. 그래야 묵은 나무의 숨결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다. 특히 이번에 나온 찻상들은 기특하다. 소나무 널이든, 먹감나무 널이든 한 몸으로 다리를 만든 찻상의 일체감이 단아하다.
욕심없는 기교다. 눈으로 보시고 마음으로 읽어내시길.

화개요 안상흡
그날은 비가 오지 않았다. 그에겐 드문일이다. 불 때는 날이면 비오는 날이 많았건만 그날은 맑았다.
한손에 집어든 장작을 능숙한 솜씨로 가마에 던지니 불의 세계는 거침 없었다. 불이 잘 들었다. 그의 모습, 그는 힘들었지만 우리에게는 경이로움이었다. 가끔 가마창 열고 매의 눈으로 그릇을 살폈다. 곁에서 눈동냥으로 들여다보니 가맛속은 화엄세계였다. 불이 그릇이고 그릇이 불이었다. 불과 하나 된 그릇은 색이 있다고 할 수도 없고, 없다고 할 수도 없는 투명함 그 자체다. 그릇은 가마 안에 있을 때 가장 예쁘다는 말이 있다. 그런것 같다.
그는 불꽃이 춤추던 밤에 있었던 시간을 깨버렸다. 그날 나온 그릇을 거의 다 깼단다. 알 수 없는 일이다. 불과 그릇이 만나는 세계는 알 수도, 말할 수도 없는 세계다.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세계인 것이다. ‘거의 다’라는 말은 몇 개는 살았다는 거다. 그 ‘몇 개’는 참으로 훌륭했다. 그릇 그대로의 그릇이었다. 내겐 그랬다. 모양과 색이 있음에도 그러함을 드러내지 않은 금강경의 원만함이 자리한듯하다. 숨이 멈춰진다. 또 어느날, 그는 불의 바다 앞에서 능숙하게 장작을 던지고 있을게다. 부디 이 다음에는 조금 더.

진주요 홍우경
한시절을 다 드러냈다. 가끔 그의 집에서 차마실 때 눈에 들었던 그릇들이다. 그것들을 한 자리에 모으니 그릇쟁이의 일대기가 펼쳐진 것이다. 세월 따라 멋과 맛이 춤을 췄다. 어느 부분을 더 할것도, 뺄 것도 없는 흐트러짐 없는 빼어남이다. 그는 세상의 정의로움이든, 그릇의 정의로움이든 무엇이든 언제나 진지하게 아랫배 힘주어 말한다. 그 ‘말씀’의 진면목이 그릇에 들어가 앉아 있다.
지금 이 자리는 또 다시 그릇의 정의로움에 대해 떠들거나 과시하려는 것은 아닐게다. 그는 아마 다른 정의를 얻고자 과거의 모든 것을 꺼내든 것 같다. ‘깨트려야 깨닫는다’는 말이 있다. 또 다른 차원의 길을 가려는 것일게다. 이미 그는 그 길에 들어섰고 이 자리는 그 길을 가기위한 최소한의 몸짓이다.
물레 앞에 앉은 그의 마른 등에 창가의 빛이 비추는 풍경을 고대한다.

새벽 5시 30분. 동쪽 하늘이 열리니 온 산에 새울음이 가득하다.
바람에 실린 구름 바삐 움직여 이 아침을 같이한다.
그들이 바로 산이고 새이고 구름이다.
셋이 만든 새 아침을 우리 모두는 더없이 반기며 맞이할 것이다.

5월 2일부터 8일까지..